Featured image of post 행복한 팀장되기

행복한 팀장되기

예전에 최고의 팀장이 뭘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 게임회사 그래픽 팀장 -
아니, 솔직히 말하면 생각도 하지 않았죠.
예전 - 한 10여년전 - 에는 이쪽 업계가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지금처럼 일손이 많이 필요한 곳도 아니었으니 …
그때는 ‘최고 실력자가 팀장이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넵. 단순무식.
그리고 실제로 한때는 최고 실력자였던 때도 있었죠 우핫핫. (알량하게)
근데 그게 하다보니 굉장히 안좋은 점이 있단 말입니다.

첫째로 피곤합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신경쓰고 참석하고 관리하고, 가르쳐도 줘야 합니다.
제 손이 덜 거쳐진 것은 보기 좋지 않습니다. 피곤합니다.
그리고 전 파트를 전부 신경써야 합니다. 캐릭터, 배경, 이펙트, 인터페이스, 동영상…
공부는 많이 되지만 잠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멀티테스킹은 기본.

둘째로 관리가 안됩니다.

일에만 치어 살다보니 사람을 작업물 데이터로 판단하게 됩니다.
빨리 잘 만드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느리게 만드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란거죠.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만, 점점 인원이 많아지고 일이 많아지면 사람을 점수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요새 무슨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따위는 신경쓸 여력도 없다는 거죠.

서양식 관리야 그 사람에 대한 객관적인데이터를 수치화하여 관리하는 방식이지만,
그 방식이 동양인 우리나라에 언제나 맞는 것 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인사는 “식사 하셨어요?” 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인삿말로 사용하는 것과 같이,
서로의 개인적 일상을 챙기도록 교육받아왔지요.
그리고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는 자기 아들의 생일을 챙겨주는 팀장님에 감동하곤 합니다.

셋째로 인상을 씁니다.

병원의 의사들이 맨날 아픈 환자만 보니까 자신의 얼굴도 찡그려지더라 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주로 하는 일이 칭찬보다는 지적이니, 웃는 얼굴보다는 찡그린 얼굴이 됩니다.
그리고 또한 나 자신이 육체적으로 피곤하므로 웃을 여유따윈 없지요.
입에서 부정적인 말이 50% 이상 튀어나오면, 아무리 입꼬리를 올리면서 부드럽게 얘기하더라도 문제는 쌓이게 됩니다.

넷째로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작업도 챙기고 일정도 챙기고 회의하고 프로그래머와도 얘기하고 맘에 안드는건 내가 다시 만들고 하다보면 어느새 저녁 먹고 나서 밤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죠. 그렇지만 그것도 5-6년 지나면 몸이 안따라주는데다가, 알아야할 분야는 너무 빨리 방대하게 늘어납니다. 게다가 결혼이라도 한답시면 그건 뭐 더 정신 없습니다. 그때쯤 되어서까지 그 리듬을 다 맞추면 폐인소리 듣기 딱 좋습니다. 그러다가 몸이라도 좀 안좋아지면 바로 뒤쳐집니다.
제가 그러다가 허리가 나가버려서 2년동안 거의 그림을 못 그린 케이스입니다.
그럼 아예 PM으로 전향해 버리는게 나을 수도 있지요. 실제로 그런 사람도 많구요.

다섯째로 나보다 뛰어난 사람과 일할 수 없습니다.

어찌보면 가장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자신이 최고다라는 인식은 물론 좋은 것입니다만
그 자존심을 해칠 요소가 나타나는 것을 굉장히 경계하게 됩니다.
즉 팀원이 자신보다 잘난것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는 거지요.
면접을 봤는데 나보다 경력이 많다… 나보다 잘해… 나보다 나이가 많아…
이런 사람과 일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저런 사람은 어떤 경우라도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말이죠)
즉 자신의 빈 구석을 채워줄 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볼때, 그리고 전체적으로 볼때 팀의 파워를 저하시키기 딱 좋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뭐 그래서 전 허리 부여잡고 쓰러진 다음부터 -
당연히 조금씩 저는 뒤쳐지게 되었습니다. 그전처럼 밤도 샐 수 없고, 그전처럼 모든걸 다 잘할 수 없게 되었어요.
괴로웠었죠. 자존심으로 똘똘뭉쳐 칼끝처럼 매섭게 살고 있었는데 말이죠.
이대로 일정관리 전문의 PM으로 변신할까…. 다시 내 분야를 찾을까…
그리고나서 결론적으로 이런 저런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

뭔가 이런 느낌이 되었달까요.

꽤나 이상적인 팀장이라고 볼 수 있는 채치수군

위의 단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팀장이 되는 것.
즉 나보다 잘하는 사람과 일하도록 하자 / 내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는 팀을 만들자  
라는 목표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뭐 사실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제 생각은 “소규모 팀일수록 앞의 방법은 여전히 유효할 것” 이라는 겁니다. (에니메이션 파트같이 전문적인 한 파트라던가…) 그러나 팀이 대규모가 될 수록, 프로젝트가 거대해질 수록 그 방법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 나보다 잘하는 사람과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나랑 같이 일하려고 할까? 를 생각했죠.

  • 일단 내 실력은 좋아야 합니다.
    뭐, 당연하더군요. 그전처럼 모든 분야에서 최고는 아니더라도, 팀장이라면 한 분야는 적어도 뛰어나야 하고,
    동시에 전체적으로도 믿음직할 수준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 근데 그렇게 전체적으로 알려면 역시 혼자서 다 해보는게 짱이긴 합니다만 (…자가당착이냐…)

  •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이거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나마 나이먹으니까 좀 나아집니다. 여러가지 비전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어요.
    자세한 내용은 다음기회에. 간단히, 그래픽 디자이너중 실력 높은 사람이 뭘 원하는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정치적 영향력도 필요합니다.
    실력이 좋은 사람의 포지셔닝을 확실하게 해주기 위해서 말이죠.

  • 커뮤니케이션 스킬
    이거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할 말은 다 하면서, 지적할 것 하고, 명확하게 나의 의견을 말하면서, 상대방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레벨로 말하기.
    여러 가지 심리학 책을 읽고, M 모 패스트푸드 (…) 점에서 배웠던 people skill 북을 꺼내서 다시 공부했습니다. (아아 이거 굉장히 도움이 되더군요. 언제 한번 정리해서 발표하고 싶을 정도)
    평소 말하던 스타일을 변화시키는 데만 몇 년 걸린 것 같습니다 …
    사실, 잘하는 사람 - 기술이 좋은 그래픽 디자이너 - 들은 팀장이 되기 싫어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일하기 편한 팀장이 있길 원하죠.
    일하기 편한 팀장이란? 결국 일하는건 똑같습니다. 자신에게 잘 말해주는 사람이죠. 오해없이, 자존심 긁지 않으며, 편안하고, 부담없게 말이죠. 다 큰 어른한테 애들처럼 그런거 신경써야 하냐고요? 솔직히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죠. 나는 어른일까요? (저도 아직 하는짓은 10대 …) 
    사람은 컴퓨터가 해주는 기계적인 칭찬에도 기분이 좋아지고 능률이 오른답니다. -_- 뭐. 그런거죠.

- 일을 나누기 
일정관리같은 경우는 개개인의 일정을 개개인이 결정하게 하였습니다. 큰 줄기와 목표만 정하고, 필요한 것은 리스트화 시켜 팀원에게 ‘보고’ 하듯이 전달한 후, 다시 큰 차원에서 일을 나누고 나머지 세부 일정은 직접 일정표를 만들어서 보고하게 하였던 것이죠. 그리고 중간보고 계속 받으면 되는 거구요. 
저는 그렇게 해서 서류일이 줄어드니 시간이 남아 좋고, 
팀원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결정권이 생기니 만족도가 높고. 일석이조가 되더군요. 

  • 물론 큰 차원에서는 완벽하게 만들어 놔야 하는건 그대로입니다만, 적어도 자질구레한 서류로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거죠 -
    그리고나서 정말 믿고 맡겨도 되겠다 라는 사람이 생기면 그사람은 일정보고를 구두로만 받거나 아예 결정 후 보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뒷수습 전문 ㅋㅋ .

뒷수습은 좋은 커뮤니케이션 동기입니다. 일종의 ‘신세를 지게 하는 것’ 의 마인드를 얻어낼 수 있고, 여유가 생긴 팀장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아주 좋은 분위기가 됩니다. 반대로 ‘팀장이 부탁하는 것’ 도 좋은 커뮤니케이션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 아 커뮤니케이션 스킬 얘기는 나중에 - 


뭐 결론적으로는 지금 매우 행복합니다. 팀원들 다들 실력이 저 따위는 상대도 안될만큼 훌륭한데다가,
매우 열성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작업적인 면이나 관리적인 면에서도 제가 도와줘야 할 구석이 있을만큼 있는데다가,
덕분에 위의 단점들이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제가 없어도 돌아가긴 할 겁니다. 지금도 제가 직접 나서야 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실무자들이 알아서 해결하고 보고하러 오지요 - 그걸 제가 다 쫓아다녔으면 편하게 쉐이더 따위 짜고 있진 못했을 겁니다 -
하지만 제가 없으면 귀찮고 불편하겠지요. 그게 좋습니다. 그게 팀장의 존재가치 아닐까요.
누구나 주도권을 주고 싶어 하지만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적절한 한계 내에서 주도권을 나눠주고, 팀장이 책임져주면 그게 좋은겁니다. 그런다고 팀원이 책임감이 없어질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자신이 잘못해서 팀장님에게 ‘폐’ 를 끼치면 자신에게 잘해준 팀장님 얼굴 보기 미안하니까 적절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권한을 나눠주니 시간이 생기고, 그러면 개개인의 집안 사정이나 오늘의 기분도 살필 수 있게 되고,
힘들어하고 있으면 도와줄 수도 있고 , 당연히 나보다 잘하는 친구들이니 늘 칭찬해 줄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 덕분에 쉐이더 공부도 할 수 있고 말이죠. 잇힝.

뭐 아직까지는 이게 좋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고민해 보면 더 좋은 생각이 나올 수 있겠죠. 
지금 팀의 스타일에서도 이게 딱 맞는 듯 하고. 

 

ps. 일정관리 전문 PM을 따로 두는 것도 추가해야겠군요. 팀이 커지면 일정관리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슬램덩크의 채소연같은 메니져 -

Hugo로 만듦
JimmyStack 테마 사용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