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을 요청받아서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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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오픈’의 시기는 회사 차원에서도 미묘합니다.
투자를 받아야 하는 회사는 투자의 지표가 되기도 하고,
투자자가 이미 있는 회사에게는 투자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하지요.
또한 오픈이라는 것은 일단, 개발비와 맞먹을만한 거대한 마케팅 예산이 집행된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즉 회사 입장에서는 ‘드디어 작전 개시다…! ’ 라고 외치며 포화가 작렬하는 전장터로 달려나가는 대대의 느낌인거죠.
게다가 게임이 유저들에게 처음 공개되는 순간입니다.
이때 각인된 첫인상은, 게임의 서비스가 종료될때까지 끝까지 따라다니게 마련이지요.
사업적인 측면에서 오픈이란, 최고의 위기이자 기회의 순간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업적인 측면 말고도,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게임 오픈이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제작에 참여한 개발자들 입장에선, 이력서에 당당히 써 넣을 수 있는 ‘오픈 프로젝트’ 가 하나 생긴 것이니까요.
개발자들 사이에서 오픈 프로젝트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이력서에 써넣을 참여 프로젝트에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 프로젝트를 넣는 것은 (그것도 개발 초기맴버면 금상첨화) 매우 큰 영광이고, 그와는 반대로 이력서에 “프로젝트A 참여 (개발중단)” 이라고 써야 하는 것은 자랑스럽지 못한 경력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지요. 그게 꼭 자신의 잘못이 아니어도 말입니다.
그 사람이 참여한 대표 프로젝트는 그 사람의 평생경력이 되게 마련입니다.
‘뭐 만든 사람이래?’ ‘000 게임 만든 사람이래’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오픈이라고 하는 것은 게임회사에 관여된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벤트입니다.
네에, 뭐… 10여전 전에 패키지 게임 만들 때 골드 마스터 (패키지 게임에서는 최종 완성본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를 완성할때의 그 기분과도 별로 다르지 않은 느낌이지요.
단지 다른게 있다면, 패키지에서는 ‘이 순간이 끝’ 이라는 의미이지만
온라인 게임으로 바뀐 지금에서는 ‘이 순간부터 지옥의 시작’ 이라는 의미라는 차이 정도일까요?
오픈이라는 것은, 일종의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지불해 버린, 손님을 가득 채운 고속버스의 상태.
달리기 시작한 겁니다. 달리면서 흐름이 안좋아 진다던가, 방향이 맞지 않다던가 차선이 틀리다는가 하는 일은 언제든지 있어요.
손님을 태우기 전 고속버스는 보다 조향을 편하게 하기 위해 의자를 뜯어내어 교체할 수도 있고, 엔진을 다시 뜯어서 재조립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달리기 시작했단 말입니다. 이제 승차감 나쁘다고 엔진을 뜯었다가는 바로 큰 사고로 직결될 겁니다.
의자가 불편해도, 이미 손님이 앉아있는 의자를 교체하려면,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옆 자리로 옮긴 다음에 최대한 손님에게
지장이 안 가게끔 의자를 교체해야 합니다.
소음이 심해서 방음재를 설치한다고 하면, 인디아나 존스의 존스 박사처럼 달리는 차 밖에서 바람을 맞으며 위험천만하게 매달린채 수리를 해야 하지요. 마치 영화처럼 말이죠. 와아, 위험합니다. 앗 터널이 앞에. 엎드려! , 이 선을 자르면 차의 전기가 전부 나가버린다고! 조심해!! 승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란 말이닷!!! 절대로 달리는 차량(서버)를 세우면 안돼!!!…
…온라인 게임은 이렇게 ‘제품(Product)’ 의 개념에서 ‘서비스(Service)’ 의 개념까지도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파생되어서, 또 한가지의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오픈베타족’ 이라 불리는 유저들의 등장입니다.
보통 오픈하게 되면 유저들이 급격히 몰렸다가 금방 흥미를 잃고 다른 오픈 게임을 찾아 다니는 유저들을 칭하던 용어였는데,
요즘에는 개발자들도 ‘오픈베타족’ 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이 오픈하면 그 시점에 맞춰서 다른 회사로 옮겨가는 개발자를 말하는 것이지요.
개발자들이 ‘오픈베타족’ 이 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력서에 채울 한 줄이 완성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 이력서에 채울 다른 한 줄을 만들기 위해서이고,
셋째는 이 이력을 바탕으로 너 높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
그리고 넷째는 개발단계의 게임이 서비스 단계로 옮겨가면 개발이 재미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동의하는 사람중의 하나입니다만)
그리고 그렇게 숙련된 인원이 빠져나가면 그 공백때문에 회사의 타격은 굉장히 커집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회사 입장에서는 아쉬워도 딱히 막을만한 논리도 없고요.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서운해 하는 것도 사실이지요.
물론 자신의 경력을 위해서 회사를 찾아 다니는 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그런 욕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도 당연하고요.
회사 입장에서는 그런 인재들을 잡을만한 비젼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에라는 평가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간혹 그런 행동이 좀 심한 개발자들도 보이곤 합니다.
회사에 입사해서 게임이 괜찮아 보이는지 재빨리 평가한 다음에, 괜찮지 않다고 생각하면 즉시 나와 버린다던가,
가능성 있는 회사의 프로젝트에는 재빨리 참여해서 이름을 올린 다음에, 오픈베타 후 떠날 준비만 하고 있는 개발자도 보이더군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 또한 이력서를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혹은 업계에서 블랙 리스트가 되어 돌아다니기도 하더군요.
이런 현상을 두고 누가 옳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입니다만,
‘오픈베타 개발족’ 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프로젝트가 거대화되고 분업화 되어서 모든 사람이 게임의 성공을 기원할 필요는 없다고 해도,
그 게임의 핵심 개발자들이 게임의 성공에 대해 믿고, 회사와 프로젝트가 성공하게끔 노력하지 않고, ‘나는 상관없어, 시키는 일만 하면 되지 뭐’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회사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게임은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인력에 의해 생산되고 유지되는 생명체와도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게임이 복잡하고 정교해질 수록 사람의 손이 더욱 더 많이 필요하게 되고, 그들 중 한 부분만 삐끗해도
성공하기 힘들게 변화되고 있지요.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게임을 ‘가내수공업’ 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만, 지금도 사실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보여집니다.
게임에서 유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가까이 있는 유저이자 고객인 개발자와 운영자들도 중요합니다.
회사는 개발자와 운영자들을 중요한 고객으로 대우해야 하고,
개발자와 운영자들도 그에 맞는 정직함과 신용을 보여줘야 합니다.
게임을 잘 만들기 위해서 좋은 엔진, 좋은 기술, 많은 투자금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사람에 대한 신용과 믿음’ 이야말로 게임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자산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