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박게임 예찬론

검색하다가 발견. 내가 옛날에 이런걸 썼었나.

중박게임 예찬론

얼마 전 어떤 칼럼에서 ‘중박게임’ 에 대한 예찬론을 아주 감명 깊게 읽은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남의 얘기 같지 않아서일까. (참고로 지금 본인의 회사에서의 대표적인 ‘중박’ 프로젝트인 ‘00온라인’ 은 안정적으로 순항 중이다.)

‘중박’게임이란, 크게 성공한 프로젝트를 ‘대박’ 이라고 한다면 ‘게임과 회사의 유지비도 뽑아내고 어느 정도 순이익도 꾸준히 나고 있는’ 정도의 프로젝트를 일컫는 말이 ‘중박’ 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본인도 중박게임 만들기를 예찬하고 싶다.
중박게임은 만드는 사람도 재미있다. 왜냐면 일단 ‘블록버스터’ 급 대작으로 생각하고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원도 적고, (물론 예산도 적게 들고), 제작 기간도 상대적으로 짧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보통 게임을 만들 때, 1~2년까지가 제일 타이트하고 긴장감 있게 만들 수 있다.

첫 기획의 의도도 꾸준히 유지한 채, 완성이 눈앞에 보이므로 낭비도 적다. 팀원들도 전부 다 합쳐서 20~30명쯤 되기 때문에, 서로 얼굴도 다 알고 친하다. 바로 앞의 파티션 건너편에는 기획자가 앉아있기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앞의 기획자에게 한마디만 해주면 된다. 뭐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3년 이상 넘어가기 시작하면, 처음의 의도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참신한 것 같던 기획도, 만들다 보니 흐지부지 된 것도 생기고, 이미 너무 틀어진 기획은 바로 잡을 엄두도 나지 않는다.

혹은 어느새 외국의 유명 개발사에서 자신이 기획한 독특한 시스템을 먼저 내놓아 버릴 수도 있다. (개발하면서 느낀 거지만, 정말로 사람 생각은 모두 똑같다.) 그러다 보니 그래픽도 3년쯤 지나면 새로운 기술과 장비의 발달로 구식이 되어가기 시작하고, 1년 동안의 작업 물을 ‘엎어’ 버려야만 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오케이. 개발기간 4년.

물론 전부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완성된 블록버스터 프로젝트들은 이런 지루함을 인내와 경험으로 극복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들에게는 큰 박수를 보내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부터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블록버스터 급 대작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박 급 프로젝트를 몇 편 경험해 보는 것이 기획자나 팀장에게는 유리한 경험이 아닐까?

또 하나 중박게임이 가지고 있는 유리함이 있다. 중박게임에는 참신한 아이디어나 기획이 있다.
아니, 있어야만 한다. 중박게임이 실패하는 것은 어설프게 대작 게임을 따라 했기 때문이다. 중박게임은 대박게임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기획을 할 수 있다.
프로젝트가 가벼우므로 실패 시에 그 위험도 적고, 분위기가 안 좋으면 전환도 용이하다. 또한 계속 그 기획을 다듬어 독특한 느낌으로 만들어 낸다면, 고정 팬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픽이 좀 부족하고 대규모 이벤트가 좀 적어도 괜찮다. 게다가 제작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으므로, 현재의 시장 상황과 트랜드, 유행을 보면서 맞춰 나갈 수도 있다. (3년 후에 유행할 것을 맞추는 것 보다 1년 후에 유행할 것을 맞추는 게 훨씬 쉽다) 그렇게 되면? 재미있게도 여러 가지 장점들이 연이어 나타나게 된다.

그 중 첫 번째 장점은 블록버스터의 발표에 영향을 잘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히 ‘대작’들을 좋아하는 층이 있다.
그러나 아기자기한 ‘중박’ 을 좋아하는 층도 분명 존재한다.
같은 대작이라면 경쟁사의 영향에 대단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되지만, 참신한 기획으로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으면 그 영향은 상당히 적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또 하나의 유리한 점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게 되는데… 바로 속편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가동하고 있으므로, 속편을 제작할 수 있는 자금도 확보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속편은 전편보다 못하다’ 라고 하지만 게임은 그 반대이다. ‘전편의 아쉬웠던 점이나 미진했던 점’ 을 수정하고 추가해서 더 재미있게 내 놓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성공 가능성은 더 높아지고, 동시에 마케팅 효과도 확실하다!
‘참신하고 재미있었던 전작’ 에 대한 유저들의 입소문과 기억은, 수 십억을 쏟아 부은 마케팅 이벤트 보다 강력하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전편을 만든 사람이 후속편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편과 후속편을 만든 사람이 다르다면 그건 단순히 이름만 같은 게임일 뿐이다)

생각해보자. 후속작이 나옴으로써 더욱 탄탄해진 명성을 쌓아 ‘대 히트작’ 이 된 경우를.
물론 누구나 대작을 만들고 싶어한다. 게임 역사에 남을 대작을.
그러나 한번에 뿅~ 하고 대작이 나오기를 요행으로 기도하는 것보다는, 투자자에게 보여줄 자신의 경력과, 성공과 실패의 경험과, 전체를 보는 눈과, 계속 긴장감을 유지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중박게임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초 대작 프로젝트의 첫 행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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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지금도 이 생각이 맞다고는 생각하는데, 슬슬 대작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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